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 재도전에 나섰던 케이뱅크가 기업공개(IPO) 절차를 연기했다. 기관 수요예측에서 충분한 수요를 끌어모으지 못해서다. 올해 하반기 랜드마크 딜(Deal)로 기대를 모았던 만큼 시장 충격은 적지 않은 모양새다. 공모절차를 준비하는 후발주자에도 철회 충격 여파가 이어질지 관심이 쏠린다.
2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케이뱅크는 지난 18일 상장 철회신고서를 제출했다. 공모가 희망밴드로 9500~1만2000원을 제시했으나 밴드 내에서 모집 금액을 채우지 못했다. 기관투자가들은 비교기업인 카카오뱅크의 주가가 크게 하락하고 있는 데다 시중은행과 비교해 가치가 고평가됐다고 판단했다.
이로써 케이뱅크는 2년 연속 증시상장 문턱에서 고배를 마시게 됐다. 회사는 지난 2022년 6월 상장예심을 신청하고 같은 달 9월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주식시장 침체로 기업가치를 온전히 인정받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상장예심 승인 효력(승인 뒤 6개월) 내 증권신고서를 내지 않고 상장 철회 수순을 밟았다.
투자자들의 아쉬움도 커지는 모습이다. 케이뱅크는 공모주 투자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딜이다. 최대 시가총액이 5조원으로 지난 2022년 LG에너지솔루션 이후 가장 규모가 컸기 때문이다. ‘묻지마 청약’이 빈번했던 연초와 달리 불확실성이 커진 하반기 IPO 시장 분위기를 다시 한번 끌어올릴 기대주로 꼽히기도 했다.
시장에서는 케이뱅크의 IPO 철회가 후속 대형 기업 상장에 미칠 영향에 주목한다. 대어급 기업의 공모 흥행 실패가 후발주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다. 지난 2022년 쏘카와 더블유씨피(WCP)가 연달아 흥행에 실패한 뒤 대어급 IPO가 종적을 감추기도 했다.
현재 예고된 IPO 대어는 서울보증보험과 LG CNS, DN솔루션즈과 롯데글로벌로지스 등이 있다. 이 중 공모 일정이 임박한 곳은 지난 8월 코스피 상장예심 신청서를 낸 서울보증보험이다. 이르면 이달 말 심사 결과가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증권신고서 제출 시점에 따라 연내 상장도 가능하다.
서울보증보험은 지난해 수요예측에서 공모가 희망밴드(3만9500~5만1800원) 하단 이하로 주문이 몰리면서 IPO를 철회한 바 있다. 당시 구주매출 100%와 예금보험공사(예보)의 블록딜 우려가 악영향을 미쳤다. 케이뱅크가 구주매출·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 이슈 등을 문제점으로 지목받은 상황에서 난관이 예상된다.
여기에 케이뱅크 상장 무산 배경에는 기대를 밑도는 내부수익률(IRR)에 반발한 재무적투자자(FI)의 반대도 있었다. 상장 기업을 바라보는 공모주 투자자들과 FI 간 시각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양측 의견을 모두 조율해야 하는 발행사·주관사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LG CNS와 DN솔루션즈도 FI의 구주매출이 예정돼있다.
투자자 자금이 풍부해지는 연초 효과를 노려도 문제다. 케이뱅크는 내년 초 증시상장을 재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 경우 상장예심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기업들과 공모시기가 겹칠 가능성이 크다. 연이은 대형 기업 상장으로 수급여건이 악화, 만족스러운 공모 성적표를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중소형 기업이 반사이익을 입을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대형 딜 무산으로 투자금이 유입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실제로 케이뱅크와 공모시기가 겹친 성우, 웨이비스 등 기업이 기관 수요예측에서 흥행했다. 씨메스도 4조원이 넘는 청약 증거금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IB업계 관계자는 “중소형 상장사를 향한 투심은 여전히 견조해 시장 전반에 걸친 한파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적은 분위기”라며 “다만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는 빅 딜에 대해서는 전망세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